Tuesday, November 1, 2011

theory of relativity


상대성이론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 중 한명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1955). 그가 발표한 상대성이론은 20세기에 발표된 가장 유명한 이론이지만, 그만큼 오해도 많이 받았다. 흔히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임을 밝힌 이론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물리법칙이 언제, 어디서나 동일함을 확인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성이론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구분된다. 아인슈타인이 과학사에 엄청난 기여를 했기에 둘 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특수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과 푸앵카레(Jules-Henri Poincare, 1854~1912)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과 힐버트(다비트 힐베르트, David Hilbert, 1862~1943)의 동시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물리학자, 수학자들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 현재 상대성이론은 우주 관측에 사용되는 입자가속기 등 물리천문분야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정밀하게 측정해야 하는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0세기 발표된 가장 유명한 이론, 상대성이론을 낳은 알버트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의 배경, ‘전자’ 이론
1888년, 독일의 물리학자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1857~1894)가 전파를 발견하면서 전자기학 연구자들은 흥분에 휩싸였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 전자기이론 중 전파의 존재를 예언한 이론은 빛을 전파의 일종으로 간주한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의 전자기 이론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 전까지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됐던 빛 에테르와 전자기 에테르는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1888년, 전파를 최초로 발견한 헤르츠.

사실 19세기 초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물질세계가 보통물질과 여러 가지 에테르들로 구성돼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헤르츠가 발견한 전파 덕분에 물질세계는 보통물질과 전자기 에테르, 이 두 가지로 단순해졌다. 이로써 학자들은 보통물질로 전자기 현상을 설명하거나, 전자기 에테르의 진동으로 보통물질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모든 물질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 이러한 희망 때문에 이전에는 극소수만 관심을 가졌던 발견들이 1888년 이후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한다.

일찍이 영국의 물리학자 J. J. 톰슨(조지프 톰슨, Joseph John Thomson, 1856~1940)은 전자기 에테르 안에서 전하를 띈 입자가 운동한다면, 그 입자의 질량이 마치 늘어난 것처럼, 주어진 힘보다 천천히 가속될 것이라는 계산결과를 내놓았다. 또한 미국의 마이컬슨(앨버트 마이컬슨, Albert Abraham Michelson, 1852~1931)과 몰리(에드워드 몰리, Edward Williams Morley, 1838~1923)는 지구가 빛 에테르 속에서 운동하지만, 빛의 속도는 지구의 운동방향과 상관없이 언제나 일정한 것으로 관찰된다는 점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게다가 1897년에는 J. J. 톰슨이 모든 물질에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는 전자를 실험적으로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네덜란드의 로렌츠(헨드릭 로렌츠, Hendrik Antoon Lorentz, 1853~1928)나 독일의 아브라함(막스 아브라함, Max Abraham, 1875~1922) 등 전자기학의 대가들은 ‘전자’이론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전자’이론이란, 모든 물질이 전자로 구성돼 있고 물질의 질량은 전자가 전자기 에테르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전자 사이의 거리는 전자의 운동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의 등장, 철도와 전신

한편 19세기 후반, 철도와 전신(電信)은 각지로 뻗어나갔다. 아무런 사고 없이 철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철도역끼리 시계를 정확하게 맞춰야 했다. 철도가 등장했던 초기에는 중앙역에서 시각을 전신으로 통보 했다. 하지만 전신으로 신호가 갈 때까지 또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역일수록 신호가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졌다. 이렇듯 철도역들의 시계를 정확히 맞추는 문제 자체는 기술적 문제였지만, 아인슈타인과 푸앵카레는 기술적 문제에서 더 나아가 물리학적인 의미를 고민했다.

1905년 5월 초, 스위스 특허국의 청년 사무관이었던 아인슈타인은 몇 가지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질량이 저울로 측정하는 물리량인 것처럼, 시간은 시계로 측정하는 물리량이다’ ‘빛의 속도는 모든 실험이 보여준 것처럼 언제나 같은 속도로 관찰된다’ ‘모든 물리현상은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한 언제나 똑같은 법칙을 따른다’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론을 완성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고민을 하소연하러 친구이자 동료 사무관인 베소의 하숙집에 갔다가 두 기차역 간 시계를 정확히 맞추는 방법에 대한 착상을 떠올렸다. 그는 그로부터 5주 만에 특수상대성이론 논문을 완성하게 된다.

장년의 수학자이자 고위 공무원이었던 푸앵카레도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경로로 표현한 논문을 1개월 늦게 완성했는데, 이 두 이론은 결국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이론은 모든 물질의 근원이라고 상상된 전자가 정말로 존재하느냐에 상관없이 언제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특수상대성이론의 확장과 확산
아인슈타인의 재능을 누구보다 일찍 알아챈 막스 플랑크.

당시 독일 물리학계의 대부였던 막스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 1858~1947)는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특수상대성이론 논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일찍 평가했다.

플랑크는 전자들의 특수한 성질을 가정하는 ‘전자’ 이론들과 달리, 갈릴레오(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1564~1642) 이래 물리학의 원리였던 상대성원리(물리법칙을 서술할 때, 물체들의 상대운동만 따져야 한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이 밝혔다고 평가했다. 당시 아인슈타인 논문 제목은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동력학에 대하여’였지만, 이 이론에 ‘상대성’이라는 단어를 결부시킨 것도 플랑크였다. 곧이어 ‘전자’ 이론들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검증하는 실험들이 진행됐고 1908년, 아인슈타인 이론의 예측치가 맞았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후 ‘전자’ 이론은 급격히 쇠락한다.

한편 1905년 9월, 아인슈타인은 6월 논문의 응용사례로 빛을 방출하는 물체를 서있는 관찰자가 측정하는 경우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관찰자가 측정하는 경우를 비교하는 짧은 논문을 작성했다. 그 논문의 결론은 물체가 E 만큼의 빛 에너지를 방출하면, 그 물체의 질량은 E/c2만큼 줄어든다는 것이었다.(c=빛의 속도) 이 이론에서 그 유명한 E=mc2 이라는 공식이 탄생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의 탄생, 물리적 직관에서 수학으로

아인슈타인은 젊은 시절, 물리적 직관만을 중시하는 연구 스타일을 고수했다. 일례로 수학자 민코프스키(헤르만 민코프스키, Hermann Minkowski, 1864~1909)가 로렌츠, 아인슈타인 이론의 수식체계를 정리해 4차원 개념을 제시했을 때, 아인슈타인은 그런 개념은 필요 없다는 논문을 출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완강한 태도는 점차 누그러져 1910년경, 수학적 관념도 유용하다고 인정했고, 1912년부터는 친구인 수학자 마르셀 그로스만과 함께 일반상대성이론에 사용하기 위한 미분기하학을 직접 공부하기 시작했다. 미분기하학을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곡면 위에서의 기하학적 성질을 미분방정식을 사용해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이다.

아인슈타인이 수학을 공부한 이유는 실제 물체에서는 가속과 중력이 같으면서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위로 가속되는 엘리베이터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체는 어느 방향에서 떨어지든지, 엘리베이터 바닥에 수직 방향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구의 중력에 끌려 떨어지는 물체는, 중력의 방향인 지구 중심을 향해 비스듬히 떨어진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 근거의 하나로 삼은 ‘등가원리’의 착상.


즉, 전체적으로 보면 가속과 중력의 효과는 같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힘의 작용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개미에게는 지구 표면이 평면이나 다름없지만, 전체적으로 지구표면은 둥그렇게 구부러져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미분기하학을 배우며 일반상대성이론을 연구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연구는 상당히 까다로운 수학을 사용하면서 수학자들에게도 새로운 연구주제를 제공했다. 당대 최고의 수학자였던 힐버트는 아인슈타인을 초청해 공동연구를 하기도 했다. 그 결과 1915년 말,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했고, 힐버트도 몇 주 늦게 거의 같은 결과를 얻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을 1916년 3월,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대중적 신화 vs 학계의 반응

일반상대성이론이 발표됐을 무렵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연구에 자극을 받은 여러 중력이론이 등장했던 상황이었다. 그 중에서도 핀란드의 노르드스트룀(Gunnar Nordström)의 이론은 일반상대성이론의 강력한 경쟁자였다.

1919년 5월 29일 영국의 천문학자들은 남미에서 일식 사진을 찍었는데, 노르드스트룀의 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 중 어느 이론이 수성 궤도의 변화를 더 잘 예측하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관측대가 영국으로 귀환해 검증작업을 한 끝에 11월 6일, 영국왕립학회와 영국왕립천문학회의 특별합동회의에서 아인슈타인 이론이 맞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은 다음날 런던의 <타임스> 지 1면에 ‘과학의 혁명/새로운 우주론/뉴턴주의는 무너졌다’라는 제목으로 크게 실렸다. 실제로는 관측오차가 너무 커, 두 이론 중 어느 이론이 맞다고 단언하기에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영국 과학자들은 1차 세계대전 동안 소원해진 독일학계와 영국학계의 관계를 다시 좋게 만들려는 의도로 영국의 뉴턴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독일의 아인슈타인이 뛰어넘었다는 식으로 과잉 해석한 것이었다. 어쨌든 이 보도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물리학계를 뛰어넘어 대중적으로도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상대성이론을 둘러싼 오해와 신화

하지만 불행하게도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관심은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이다’, ‘4차원’과 같이, 오해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호한 관념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물리법칙의 보편성이나, 측정과 이론적 개념의 관계와 같은 핵심적인 문제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때문에 추상개념만으로 현실세계를 재단하는 일들이 벌여졌다. 일부 유물론자들은 아인슈타인이 눈에 보이는 물질을 보이지 않는 에너지라고 착각했다고 공격했고, 반유물론자들은 아인슈타인이 ‘유물론은 틀렸다’라고 증명했다고 믿었다. 프랑스의 한 유명한 철학자는 심리적 경험으로서의 시간과 물리적으로 측정하는 시간을 혼동하기도 했다.

피카소와 달리는 상대성이론에 자극을 받아 미술 분야에서 독자적인 성취를 이룩한 케이스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한다고 우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들을 둘러싼 오해와 신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이 대중적으로 명성을 얻는 기폭제가 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계 내부에서는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업적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덜 인정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일반상대성이론의 발표 이후에도 또 다른 경쟁이론들이 계속 출현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를 전후로, 대체로 일반상대성이론이 옳을 것이라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상대성이론의 응용과 미래

1930년, 영국의 물리학자 디랙(폴 디랙, Paul Adrian Maurice Dirac, 1902~1984)은 상대론적 양자역학이론에 근거해 양전자의 존재를 예언했다. 양전자는 1932년에 발견 됐는데, 현재 의료장비인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 장치를 동작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 병원에서 PET 사진을 찍을 때마다 특수상대성이론의 혜택을 받는 셈이다.

1970년대 말, 일반상대성이론이 경험적으로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관측과 기술체계가 등장했다. 1978년 발사되기 시작한 위성항법장치(GPS) 위성들은 위성궤도에서 고속으로 움직이면서 정밀한 전파신호를 발사한다. 이 위성들은 고속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특수상대론적 효과에 의해 대체로 하루에 1천분의 7초 정도의 비율로 시간이 느려진다. 또한 우주에서의 중력이 작기 때문에 일반상대론적 효과에 의해 대체로 하루에 1천분의 45초 정도 시간이 빨라진다.

이 두 효과를 모두 합해서 보정해야 GPS 장치가 정확히 위치를 계산할 수 있고, 휴대전화 단말기와 기지국이 시각을 맞춰 전파신호를 헷갈리지 않게 주고받을 수 있다.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PET)에 사용되는 양전자는 상대론적 양자역학 이론에 의해 예견된 입자다.

이렇듯 인류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사용해 길을 찾고 휴대전화로 통화할 때마다 상대성이론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많은 학자들은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는 방정식 중 하나인 중력장 방정식을 통해 블랙홀의 존재를 밝혀냈다. 1979년부터는 천체의 중력에 의해 더 먼 천체의 빛이 구부러지는 중력렌즈 현상이 실제로 관측되기 시작했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아인슈타인 십자가와 아인슈타인 고리.


이렇듯, 일상생활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은 활용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물리학자들은 일반상대성이론이 완전히 옳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것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지지하는 경험들이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서만 예측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반상대성이론은 특수상대성이론과 달리, 양자역학과 완벽하게 융합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자중력이론과 같이 우주론과 연관된 분야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을 포괄하면서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론을 탄생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1. 에테르(ether)
    원래 뜻은 맑고 깨끗한 대기(大氣). 빛을 파동으로 생각했을 때, 이 파동을 전파하는 매질로 여겨졌던 가상물질


black hole


블랙홀

블랙홀(black hole)의 존재는 현대천문학과 물리학의 이론이 정확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현대천문학의 별 진화이론과 현대물리학의 일반상대성이론은 블랙홀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현대천문학과 물리학의 상징, 블랙홀.


인정받지 못한 ‘블랙홀’의 존재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이 작용한다. 특히 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을 중력이라고 하는데, 이 중력 때문에 인간은 공중에 떠다니지 않고 지표면에서 생활할 수 있다.

만일 지구에서 중력보다 더 큰 속도로 물체를 던지면 어떻게 될까? 초속 11.2km의 속도보다 빠르게 물체를 던지면 지구를 탈출할 수 있다. 따라서 초속 11.2km를 지구 탈출속도라고 부른다. 물론 지구보다 더 강한 표면중력을 갖는 목성의 탈출속도는 초속 59.5km이다. 여기서 중력이 이들보다 엄청나게 강한 천체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천체의 탈출속도는 어떻게 될까? 마침내 광속, 즉 초속 30만km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광속보다 큰 탈출속도를 갖는 천체가 존재한다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공상과 같은 이런 아이디어 하나에서 블랙홀이 탄생했다.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

1915년, 독일의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은 중력에 의해 공간이 휜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상대성이론의 핵심인 중력장 방정식은 빛이 휘어야 성립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중력장 방정식은 물리학의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방정식 중 하나로 꼽히며, 이를 완전히 풀어낼 수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빠른 1916년에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칼 슈바르츠실트(Karl Schwarzschild)가 회전하지 않는 천체의 경우 해당되는 중력장방정식의 답을 구했다. 그 답에 따르면 태양 바로 주위에서는 중력 때문에 빛이 약 2″(1°= 60′= 3600″)의 각도만큼 휘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 결과에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1919년,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개기일식을 이용해 빛이 휜다는 사실을 관측해내자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블랙홀, ‘미운 오리 새끼’ 에서 ‘백조’로 변신

천체망원경 제작 기술의 발달로 중성자별이 발견되면서, 마침내 블랙홀에 대한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의 태도는 돌변하게 된다.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갖는 중성자별의 크기는 대략 한국의 수도인 서울시만하다. 이런 중성자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발견된 이상, 그 보다 조금 더 수축한 블랙홀의 존재를 의심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블랙홀에 대한 연구가 1950년대~1960년대에 걸쳐 다시 불붙기 시작했고, 이로써 블랙홀의 존재는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화려한 변신을 하게 된다.

특히 뉴질랜드의 수학자 로이 커(Roy Kerr)가 1963년, 회전하는 구대칭의 천체에 적용되는 중력장 방정식의 답을 구해 블랙홀 연구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회전하지 않는 슈바르츠실트 풀이를 구한 지 약 50년이 지나서야 ‘커 풀이’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천문학에서슈바르츠실트 블랙홀, 커 블랙홀이라는 용어가 생겼는데, 이 말은 각각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 회전하는 블랙홀을 의미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결과는, 같은 질량을 갖는다면 슈바르츠실트 블랙홀보다 커 블랙홀의 크기가 최고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이었다. 즉, 태양의 경우 블랙홀이 돼 최대한 빨리 자전하면 반지름이 1.5km가 된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영국의 벨(Bell)이 1968년 전파 관측 도중 매우 규칙적이고 주기가 약 1초에 불과한 전파의 박동을 발견했다. 그 당시까지 알려진 어떠한 천체도 이렇게 짧은 주기의 관측 자료를 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 발견은 곧 천문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게 됐다. 심지어 처음에는 외계의 문명에서 날아오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었는데,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전파원을 펄서(펄사, pulsar)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펄사의 정체는 곧 빨리 회전하는 중성자별로 밝혀졌다. 이를 통해 중성자별의 입지도 더욱 확고해졌다.

블랙홀 상상도.


비로소 ‘블랙홀’이라는 이름을 얻다

마침내 1969년, 미국의 조 휠러(John Archibald Wheeler)는 블랙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믿겨지지 않는 일이지만, 사실 이전에는 ‘블랙홀’이란 이름조차 없었다. 그 대신 ‘얼어붙은 별’, ‘붕괴한 별’ 등의 이상한 이름으로 불려온 것이다. 그리고 블랙홀은 ‘빛까지 빨아들이는 지옥’ 또는 ‘시공간의 무서운 구멍’ 등으로 불리며 모든 것을 남으로부터 빼앗기만 하는 ‘놀부’ 같은 이미지를 굳히게 됐다.

그런데 영국의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박사가 블랙홀에 대한 개념을 모조리 바꿔놓았다. 호킹은 블랙홀이 ‘흥부’처럼 남에게 베푸는 착한 성격도 지니고 있어서, 무궁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탱크로 간주돼도 무방함을 증명했다. 호킹은 이를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Black holes ain't so black)’ 같이 표현했고 1973년, ‘블랙홀은 검은 것이 아니라 빛보다 빠른 속도의 입자를 방출하며 뜨거운 물체처럼 빛을 발한다‘는 학설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다. 호킹이 주장한 이론에 따르면, 빅뱅 직후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블랙홀이 무수히 태어나야만 한다. 이런 블랙홀을 ‘원시 블랙홀’이라고 부는데, 원시 블랙홀의 질량은 10만 분의 1g보다 크면 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원시 블랙홀의 최대 질량은 태양 질량 정도이므로, 크기는 대체로 아주 작다. 이러한 원시 블랙홀이 일반 천체와 같이 초속 수백km의 속도로 우주공간을 날아다니면, 웬만해서는 다른 천체들에게 중력으로 포획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천체와 충돌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성자만한 블랙홀이 지구에 충돌하면 혜성이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피해를 줄 수 있다.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과 회전하는 블랙홀.


블랙홀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

현대의 거대한 천체망원경들이 개발되면서 여러 은하 중심 부분에서 태양보다 수억 배 더 무거운 블랙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실제로 이들은 크기가 태양계만하고, 태양과 같은 별 1천억 개정도가 낼 수 있는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 이렇듯, 이제는 ‘과연 블랙홀은 존재 하는가’라고 물을 때가 아니라 ‘블랙홀은 몇 종류나 있는가’ 물을 때인 것이다.

또한, 블랙홀은 SF(과학소설, Science Fiction) 작가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줬다. 오늘날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소설이나 영화들 중에, 블랙홀을 통한 시공간 여행을 빌리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한 블랙홀이 다른 우주에 있는 블랙홀과 이어질 수만 있다면 우주여행을 하는데 지름길 노릇을 할 수 있다.

웜홀 우주선 상상도.

이것은 마치 사과 속의 벌레구멍과 같아서 사과의 한 쪽 표면에서 다른 쪽 표면으로 벌레가 가는데 시간을 절약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어진 두 블랙홀을 실제로 ‘웜홀(worm hole, 벌레구멍)’이라고 부른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얻어맞았다는 이야기 때문에 상대성이론을 전공하는 과학자들이 이제껏 사과를 많이 인용해 왔지만, 드디어 사과 속의 벌레가 만든 구멍까지 학술용어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웜홀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한쪽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다른 쪽 블랙홀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그 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쪽 출구도 무엇이든지 다 집어삼키는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무엇이든지 내놓기만 하는 ‘화이트홀(white hole)’이 출구에 있어야만 했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이 양쪽의 입구와 출구를 각각 맡는 웜홀은 이상적인 우주여행의 지름길이다. 화이트홀은 한동안 우리의 희망 사항으로 남아있을 듯 했다. 하지만 최근에 호킹이 제기한 작은 블랙홀은 화이트홀과 다름이 없다는 주장은 과학적인 입지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블랙홀은 앞으로도 21세기 천문학과 물리학의 상징적 위치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인류가 블랙홀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1. 블랙홀
    별이 극단적인 수축을 일으켜 밀도가 매우 증가하고 중력이 굉장히 커진 천체를 말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 근거를 둔 것으로, 물질이 극단적으로 수축하면 그 안의 중력은 빛, 에너지, 물질, 입자의 어느 것도 탈출하지 못할 만큼 강해진다.
  2. 일반상대성이론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1915년에 발표한, 중력을 상대론적으로 다루는 물리 이론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이 ‘시간+공간’의 이론이라면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공간+중력’에 관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질량이 시공간을 휘게 해 중력장이 형성된다고 기술하는 중력장 방정식의 하나로 집약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중력을 다루는 이론 가운데 가장 정확하게 실험적으로 검증됐다.
  3. 중성자별
    중성자만으로 구성된 별. 원자가 굉장한 압력을 받게 되면 전자가 양성자로 들어가 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가 된다. 중성자별이 그 고압의 중력에서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중성자 간의 반발력인 ‘축퇴압’ 때문이다. 중성자별은 축퇴압이 중력과 균형 잡혀있는 초고밀도의 별이다. 중력이 축퇴압을 넘어 버리면 한없이 찌그러져 블랙홀이 된다.
  4. 스티븐 호킹의 학설
    물체가 블랙홀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빛보다 빠른 속도가 필요한데, 이런 일은 보통 물체에는 불가능하다. 스티븐 호킹은 이러한 종래의 학설을 뒤집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이론에 따르면 블랙홀이 입자를 방출한다는 내용의 학설을 발표했다.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바로 바깥쪽 진공에서는 양자요동을 통해 입자와 반입자가 생성되는데, 이중 반입자는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으로 떨어지고, 입자는 외부로 방출된다는 것이다. 이때 블랙홀로부터 방출되는 열복사를 호킹 복사라고 한다.

bigbang theory


빅뱅

빅뱅(Big Bang)은 대폭발 이론으로도 불리며, 블랙홀과 함께 천문학과 물리학계의 화두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태초의 우주는 엄청나게 밀도도 크고 무지막지하게 뜨거웠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대폭발 즉 빅뱅을 일으켜 팽창우주가 되었다는 것이 현대 우주론의 정설이다. 빅뱅에서 ‘뱅’은 우리말로 ‘꽝’ 정도에 해당되는 의성어다. 빅뱅은 직역하면 ‘큰 꽝’ 정도의 웃기는 말이다.

밀도도 크고 뜨거웠던 태초의 우주 상태에서 대폭발 즉 빅뱅을 일으켜 팽창우주가 되었다는 것이 현대 우주론의 정설이다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정적인 우주
1915년, 독일 물리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는데, 이 이론에 기반을 두고 우주론을 만들었다. 아인슈타인이 이론을 세울 당시에는 우주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동적(dynamic)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때까지 관측된 우주의 모습은 정적(static)이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정적인 우주의 모습을 기술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중력으로 엮어진 은하들로는 정적인 우주를 만들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은하들은 서로 당기기만 할 뿐 밀어내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유한 개수의 은하를 가지고 정적인 우주를 엮어놓으면, 그 우주는 중력에 의해 바로 붕괴됐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다소 억지스럽게 들린 주장, 즉 은하들 사이에는 인력인 중력 이외에도 서로 밀어내는 척력이 작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이것은 서로 잡아당기는 은하들 사이에 ‘버팀목’을 집어넣어 붕괴를 막아 보겠다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에 의해 우주가 정적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됐다.

사실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장 방정식 속에는 동적인 우주를 기술하는 답도 이미 포함돼 있다. 혹시 책이나 잡지에서 ‘아인슈타인의 실수’, ‘아인슈타인의 고집’ 등 아인슈타인의 학문적 업적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한 제목을 발견하면, 바로 ‘척력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하지만 이 주장은 오늘날 일리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만든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장방정식 속에는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숨어있었다.

프리드만(Friedmann), 르메트르(Lemaitre), 로버트슨(Robertson), 워커(Walker) 같은 당대의 우주론 연구자들은 팽창우주에 관련된 중력방정식의 답을 구하기 위해 연구에 몰두했다. 이 연구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팽창우주에서 팽창속도는 점점 감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를 붕괴시키던 은하 사이의 중력이, 이번에는 우주 팽창을 방해하도록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의 크기는 시간에 따라 늘어나기는 늘어나되, 점점 감속되는 것이다.


허블, 우주 팽창 발견하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최초로 발견한 에드윈 허블.

미국의 천문학자인 허블은 1929년 윌슨산 천문대의 망원경을 이용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최초로 발견했다. 허블의 결론은, 은하들은 방향에 관계없이 우리 은하로부터 2배, 3배, …, 후퇴하고 더 먼 거리에 있는 은하는 거리에 정비례해 더 빨리 후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우리 은하를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팽창우주는 풍선에 비유할 수 있다. 바람을 넣지 않은 풍선들에 점을 찍어, 그 점들을 은하라고 생각해 보자. 이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점들 사이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풍선의 공기가 빠지면, 표면의 어떤 점에서 보더라도 주위의 점들은 점점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만일 이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어떠한 은하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주위의 다른 은하들은 그 은하를 향해 접근하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빅뱅 우주론과 연속창생 우주론의 대결

빅뱅 우주론과 달리 태초의 우주가 모든 면에서 지금과 마찬가지였다는 우주론이 한 때 제시되기도 했었다. 즉,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에 따라 우주에서 은하가 하나씩 없어지면 빅뱅 우주론에서 주장하는 태초 우주의 높은 밀도와 온도를 피할 수 있다는 줄거리를 갖는 우주론이다. 따라서 시간이 제 방향으로 흐른다면 이 우주론에서는 은하가 하나씩 생겨야 한다. 그래서 이 우주론을 연속창생(Continuous Creation) 우주론이라고 부른다. 이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론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우주의 모습이 똑같아야 한다. 즉,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물질도 끊임없이 생겨나서 총 밀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 우주론을 항상 정상 상태를 유지하는 우주론이라는 의미로 ‘정상우주론’이라고도 부른다.

‘빅뱅 우주론(Big Bang)이 맞느냐 연속창생 우주론(Continuous Creation)이 맞느냐’ 하는 역사적인 논쟁은 사실 미국과 영국의 대결이기도 했다. 빅뱅 우주론은 가모프(George Gamow)를 중심으로 한 미국 과학자들에 의해, 연속창생 우주론은 영국의 헤르만 본디(Hermann Bondi), 프레드 호일(Fred Hoyle), 토머스 골드(Thomas Gold) 등의 영국 과학자들에 의해 주장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빅뱅 우주론이 이김으로써 영국이 가지고 있던 우주론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해도 아마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우주배경복사 발견으로 빅뱅 우주론 승리

빅뱅 우주론이 연속창생 우주론을 이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바로 우주에 존재하는 헬륨의 양이었다. 우주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산, 행성, 별, 은하 등)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총 물질과 에너지의 약 4%에 불과하다. 이 4% 중에서도 약 3/4은 수소로, 나머지 약 1/4은 헬륨으로 구성돼 있다. 수소가 핵융합을 통해 헬륨이 되려면 우주의 시초가 한 때, 적어도 1천만 도(℃) 이상이었어야 한다. 따라서 우주에 헬륨이 수소의 1/3 가량이나 존재한다는 사실은, 태초가 엄청나게 고온에서 시작됐다는 증거가 된다.

빅뱅 우주론에서 보면, 우주가 탄생한 후 약 30만 년이 지났을 때 우주의 온도는 3000도(℃)까지 떨어진다. 그러면 우주공간을 채우고 있던 자유전자들이 모두 수소나 헬륨 원자핵에 붙잡히게 된다. 따라서 그 때까지 전자 때문에 운동을 제한받던 광자(빛)들은 자유로이 운동할 수 있게 된다. 즉 빛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주는 흐렸다가 갑자기 맑아진 셈이다. 이 때 퍼져 나가기 시작한 빛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tion)이다.

미국의 아노 펜지어스(Arno Penzias)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은 1964년 우연히 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해 빅뱅 우주론이 연속창생 우주론을 제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주배경복사란 태초의 뜨거운 우주 속에 고르게 퍼져 있던 빛이 식은 것으로, 우주 속에 고르게 퍼져 있다가 -270도(℃)까지 식어빠진 상태로 발견됐다. 즉, 우주배경복사는 뜨거운 물로 막 목욕을 마친 목욕탕에 남아 있는 수증기와 같은 것이다. 그 수증기를 보고 목욕을 막 마친 사람이 뜨거운 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추리할 수 있는 것처럼, 우주배경복사를 보고 태초의 우주는 뜨거웠다고 결론내릴 수 있는 것이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이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같은 빅뱅 우주론 내에서도 우주의 나이를 놓고 논쟁이 붙기도 했다. 현대 우주론의 첨단을 걷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텍사스의 드 보클레르(Gérard de Vaucouleurs)를 중심으로 한 천문학자들은 100억 년, 캘리포니아의 샌디지(Allan Sandage)를 중심으로 한 천문학자들은 200억 년을 주장했다. 즉, 우주의 나이는 100억 살과 200억 살 사이 어떤 값을 갖는다.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가장 최근 관측치는 137억 년이다.(2010년 3월 천체물리학 저널에서 미국과 독일 과학자들이 허블망원경으로 수집한 자료와 우주배경복사탐사 위성(WMAP) 자료를 종합해 우주 나이를 137억 5천만년으로 확인, 발표했다.)  

우주의 생성과 팽창 연대표. 


빅뱅우주론의 남겨진 숙제

최근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보이지 않는 물질이 우주에 상당히 존재한다고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그 물질을 우리는 ‘암흑 물질(dark matter)’이라고 부른다. 암흑 물질의 정체 규명 문제는 현대 우주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이다. 암흑 물질 이외에도 우주는 ‘암흑 에너지(dark energy)’를 가지고 있다. 이 에너지는 우주팽창을 가속시켜, 마치 아인슈타인의 우주 척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우주를 만든다. 아인슈타인의 주장이 결코 억지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늘로 던져진 돌은 두 가지 운명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다시 땅으로 떨어지든가, 아니면 지구를 탈출하든가 하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그 돌이 어떤 속도로 던져졌느냐에 달렸다. 우주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태초 어떤 크기로 대폭발을 했느냐에 따라 무한히 팽창을 계속하느냐, 팽창을 하다가 멈추고 다시 수축하느냐가 결정된다. 즉, 어떤 세기보다 더 큰 힘으로 대폭발을 했으면 은하들의 중력이 팽창 속도를 감속시킬 수는 있지만 팽창 자체를 막지 못해 영원히 팽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세기보다 더 작은 힘으로 대폭발을 했다면 은하들의 중력은 팽창을 계속 감속시킨 후 마침내 팽창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천문학자들은 어떤 것이 우주의 운명인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더 커다란 천체 망원경, 더 정밀한 관측 기술이 개발되어야 해결될 수 있는 분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