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6, 2011

감정이입 vs. 공감

감정이입 vs. 공감

감정이입(Empathy)과 공감(Sympathy)은 문학, 예술, 심리등 다양한 방면으로, 이해와 소통을 돕는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맥락과 뜻을 같이하지만, 이 둘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 하느냐에 따라서 보다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인 결말을 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작지만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예전에 코펜하겐에 있을 때 독거노인들을 위한 리서치 및 디자인을 개발한 적이 있었다. 요양원에서 혼자사는 노인들을 위한 프로젝트였는데, 리서치 중 맞닥트린 두 키워드가 바로 감정이입 vs. 공감 이였다.
오늘 불현듯 하나의 그림을 보고 이 두 키워드가 떠올랐다.
라인으로 흐르듯 그린 그림이였는데, 딱 초등학생 수준의 낙서에 불과한 그림이였는데, 그만 찌릿하리만큼 섹시한 느낌이 퉁하고 떨어지드라. 에로영화를 보면 공감이 아닌 감정이입이 먼저 되듯이… 오늘 느낀 이 느낌도 분명 빨리듯 따라 들어가 버린 본능적인 감정이입이리라.
휴우~
어쨌거나 이왕 튀어나온 거, 그럼 감정이입과 공감이 어떻게 틀린지 뒤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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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섭의 문학비평용어사전에서는 공감(Sympathie; Sympathy)을 주로 인간끼리 무엇을 함께 느끼는 것으로, 감정이입(感情移入; Einfühlung; Empathy)을 그 이입의 대상의 안으로 들어가서 느끼는 것으로 구분하여 공감을 이자적(二自的) 상태로 설명하는 반면 감정이입은 일자적(一自的) 상태로 설명하고 있다.
감정이입(感情移入; Einfühlung; Empathy)
대상과 인간에 대하여 가지는 자신의 감정을 저도 모르게 다시 그 대상과 인간에게 옮겨 넣고 마치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이 느끼는 것을 감정이입이라 한다. 예를 들어, 흐르는 시냇물은 늘 소리를 내며 흘러가지만, 감정을 느끼는 주체자가 슬플 때는 냇물 소리가 슬프게 느껴져 처량한 소리를 낸다고 하고, 주체자가 기쁠 때는 명랑한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한 독자가 소설의 주인공과 자기를 동일시(同一視)하여 그 주인공이 웃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자기도 같은 마음에서 따라 웃었다는 것, 또는 무섭게 찡그린 배우의 얼굴을 보면서 관객이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는 것 등은 다 감정이입의 결과이다.
독일의 헤르만 로체(Hermann Lotze)가 1858년에 처음 예술과 관련지어서 아인필룽(Einfühlung, 감정을 넣어줌)이란 말을 썼고, 후에 테오도르 립스(Theodor Lipps)가 예술의 이론으로 정립시켰다. 그들에 의하면 수사학에서 의인법(擬人法), 비유(比喩) 등은 모두 감정이입의 결과라는 것이다. (“내 마음은 촛불이오.”에서 시인은 자기의 정서를 촛불에 옮겨 넣고 있다.)
공감(共感, sympathy)
공감(共感, sympathy)은 주로 인간끼리(또는 인격이 부여된 상상적인 행위자에게) 동류(同類)의식을 가지는 것을 뜻한다. 즉 <햄릿>을 보면서 내가 감정적으로 햄릿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민을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는 제3자의 감정이 공감인 것이다. 감정이입이 결합시키는 것이라면 공감은 나란히 서게 하는 것이다.
공감의 능력이 없으면 작품을 읽을 수 없다. 작중 인물들은 대개 공감 또는 반감(反感)을 사도록 되어 있으며, 그들에게 얼마나 옳게 공감하고, 또 얼마나 바르게 반감을 가지는가가 독자의 질을 결정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이로써 미루어보면 공감은 다분히 지적이고 사상적인 것인 반면, 감정이입은 육체적이고 본능적이다.
작품의 전달을 위해 위의 두 가지는 다 필요한데, 감정이입에 역점을 두는 작가는 암시성이 강한 말을 골라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에 치중할 것이고, 공감에 역점을 두는 작가는 인간 본연의 성격을 부각시키려 할 것이다.
- 이상섭 ‘문학비평용어사전’(민음사, 197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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